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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은 어떻게 예향(藝鄕)이 됐을까?

2월 19 업데이트됨

많은 도시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며 ‘예향(藝鄕)’이니 ‘문화의 도시’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실속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영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통영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을 엄청나게 배출한 곳이거든요. 게다가 그들 대부분이 ‘네임드’지요.

전혁림미술관

예술에 있어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가 더 유명한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볼 만 하지요. 특히 대하소설에 있어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박경리 작가라면 말입니다.

박경리 작가는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여자중학교의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작가로 데뷔하게 되지요. 그리고 작가로서, 한국 문학사에 빛나는 『김약국의 딸들』 『파시』 『토지』 등과 같은 문학적 유산을 남기게 됩니다. 산양읍에 위치한 박경리문학관은, 그런 작가의 삶과 작품을 기리는 곳입니다.

전시관에는 생전의 작가가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공간적 배경을 축소모형으로 만들어 놓아서, 책을 읽었던 독자들에게는 문학적 상상력이 현실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 한쪽에는 박경리 작가의 책들을 비치해놓고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었기에 잠시나마 독서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도 있지요.

문학관 뒤편으로 이어져 박경리 작가의 묘소까지 이르는 길은 주위 풍경이 좋고, 그 끝에 이르렀을 때의 전망도 참 좋습니다. 그러니 여유가 있다면 한 번쯤 걸어보는 것도 좋겠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시 말입니다. 하지만 김춘수 작가를 단지 『꽃』 하나로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1922년에 출생해 2004년에 소천한 그가 남긴 시들은, 하나 같이 현대적이며 그래서 지금도 시인이 우리에게 전달해주려는 이미지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리는 기념관은 조금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고, 그나마도 전시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춘수 기념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통영 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었던 전혁림 화가의 작품들을 전시해놓은 미술관이 있습니다.

전혁림 화가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대신 자신이 태어난 통영에서만 활동을 하며, 통영의 이미지를 화폭에 펼쳐놓은 작품들로 유명해졌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색채인 오방색(청, 적, 황, 백, 흑)으로만 작품을 완성시키는 한편, 통영의 바다색을 닮은 코발트 블루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니 그의 미술관에서의 감상은 즐거울 게 틀림없지요.



근래 들어 유명해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백석 시인이 통영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압록강과 멀지 않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석 시인은, 한 여인에게 반해 남쪽의 끝 통영까지 찾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구애는 실패하고 그저 많은 시를 남기고 통영을 떠나야 했지요. 심지어는, 만날 약속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며 쓴 시도 있을 정도로 백석 시인은 그 여인을 마음 속 깊이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아쉽게도 그랬던 시인을 기리는 기념관은 없지만, 그가 통영에서 머물던 항남동 골목에는 아직 시가 남아 있으니 당시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하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통영이 배출한 예술가들은 하나 같이 “고향의 풍경이 나를 키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통영의 산과 바다가 아름답다는 뜻이지요. 통영이 낳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미리 접한 후 여행을 한다면, 어디를 보든 그 감상은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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